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노모토 키하치 (문단 편집) == 프로 시절 == 1955년 입단해서 고졸신인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타격 기술이 훌륭하고 선구안이 뛰어나 데뷔 1,2년차에 리그 최다 볼넷 숫자 1위를 기록했다. 1960년부터 3년연속 최다안타를 기록했고 1961년의 180안타는 경이로운 숫자였다. 1968년에는 사상 최연소인 31세 7개월에 2,000안타를 달성했는데 당시 2,000안타를 기록한 타자는 [[카와카미 테츠하루]]와 [[야마우치 카즈히로]]뿐이었다. 좌-중-우 방향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타구를 날렸던 [[장훈(야구선수)|장훈]]과 달리 [[테드 윌리엄스|공을 잡아당겨 때리는 스타일]]이었고,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양산했다. 같은 팀원이며 에노모토와 클린업을 짜고 있던 [[야마우치 카즈히로]]는 완벽한 타격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현재는 사라진 [[도쿄 스타디움(야구장)|도쿄 스타디움]]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최다안타 타이틀은 총 4회를 획득했으며, 이는 [[후쿠모토 유타카]], [[부머 웰즈]]와 함께 퍼시픽리그 역대 2위이다.[* [[스즈키 이치로|이치로]]가 경신하기 전까지는 리그 1위였다.] 장훈은 "수위타자 타이틀을 놓고 다툰 건 에노모토뿐이다. 투수가 어떤 공을 던져도 결코 도망가지 않았으며 저런 타자는 다른 가와카미 데쓰하루뿐이었다. 대단한 타자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토요다 야스미츠]]는 "타격의 능숙함은 사상 최고이고 칠 수 없는 코스나 높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평하고 있으며, 팀 후배 아리토 미치요는 신인 시절 에노모토의 연습을 보고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노모토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노무라 카츠야]]는 현역 시절 가장 무서운 타자 중 한 명으로 꼽고 있다. 노무라는 상대 타자를 「속삭임 전술」로 교란하기로 유명했는데[*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다음 공은 머리"맞으면 아플텐데"폼이 그게 뭐냐!" 등 상대방의 속을 긁는 직접적인 말을 하며 타자의 신경을 흐뜨렸다고 한다. 상대팀의 보복이 시작되면서 혼잣말을 하거나 의미를 할수 없는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속삭임 전술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3명을 꼽았는데, [[나가시마 시게오]]에게 "타격폼이 이상한데?"이 말을 하자 타격폼을 바꾸고 홈런을 때리며 돌아오질 않나, [[오 사다하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장훈(야구선수)|장훈]]은 헛스윙을 하는척하면서 노무라의 뒷통수를 갈겨버렸다고 한다.], 에노모토의 독특한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속삭임 전술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무라는 에노모토에 대해 "저 정도로 선구안이 좋은 선수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내 속삭임도 통하지 않았다. 그토록 무서운 타자는 후에도 먼저도 마주친 적이 없다, 포수 노무라로 가장 상대하고 싶지 않은 타자"로 평가했다. 노무라 카츠야는 덧붙여서 "타석에서 처절하게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아슬아슬한 코스를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잡아준 후, 에노모토가 손가락을 3센치정도 넓혀 "이만큼 빠져있다"라고 불쑥 말했다. 실은 나도 그 정도 벗어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지 똑똑히 보고 있는지 몰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라이벌 팀 에이스 [[이나오 가즈히사]]가 에노모토를 상대하기 위해 [[포크볼]]을 마스터했으며, 팔꿈치에 부담이 가서 포크볼을 봉인했지만 에노모토에게만 사용했다. "기분 나쁜 정도의 집중력을 느꼈다. [[슛]]도 [[슬라이더]]도 깨끗하게 쳐 버리므로, 에노모토에게만 포크를 던졌다. 단 한명의 타자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공을 기억해야만 했다. 에노모토 씨와의 승부만이 야구를 하고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니시모토 유키오]]는 "지금까지 본 타자 중 가장 정확한 타자가 누구인지 물으면 주저없이 에노모토를 꼽겠다"라고 했다. 에노모토와 [[오 사다하루]]를 지도한 아라카와 히로시는 "배트 컨트롤이 좋고, 타자로서의 완성도는 오보다 에노모토가 위"라고 말하고 있다. 둘을 비교한 코멘트로는, "둘 다 연습을 많이 하고 더욱 파고들려고 했지만 파고드는 방법은 서로 달랐다. (오)사다하루는 운이 좋아서 홈런이 되면 늘 좋아했으나, 에노모토는 홈런이 됐어도 '이렇게 쳤으면 더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파고들어서 여유과 놀이가 생긴 사다하루는 게으름을 적당하게 피우는 걸 잘했다. 이 점이 세계 최고의 홈런왕이 된 사다하루와 그렇지 못했던 에노모토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했다. 에노모토가 명예의 전당 헌액 당시 "오, 나가시마, 에노모토는 모두 내 제자지만 그 중에서도 에노모토는 수제자니까 오나 나가시마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때와는 다르다. 고생했다"라고 축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